지구에서 한아뿐


외계인 경민과 지구인 한아의 아주 희귀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 『지구에서 한아뿐』.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세랑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10년 전 쓴 작품을 다시 꺼내어 과거의 자신에게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며 다시 한 번 고쳐 펴낸 다디단 작품이다.

칫솔에 근사할 정도로 적당량의 치약을 묻혀 건네는 모습에 감동하는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이야기와 시간이 담긴 옷에 작은 새로움을 더해주곤 하는 한아에게는 스무 살 때부터 좋아한, 만난 지 11년 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늘 익숙한 곳에 머무르려 하는 한아와 달리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경민은 이번 여름에도 혼자 유성우를 보러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다.

자신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경민이 늘 서운했지만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던 때,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벌어지고,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지 미묘하게 낯설어졌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게나 싫어하던 가지무침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아를 늘 기다리게 했던 그였는데 이제는 매순간 한아에게 집중하며 조금 더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달라진 경민의 모습과 수상한 행동이 의심스러운 한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간다고 혼란에 빠지는데…….

아 뭐랄까... 마레 트란퀼리타티스+판도라의 상자를 예전에 준비했었던 입장에서 완전히 "졌다" 고 생각되는 책... 근데 반대로 얘기하자면 제가 구상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잘팔리는 걸 보니 제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던 거겠죠? 후훗
미묘한 SF 미묘한 사랑 미묘한 인외X인간을 사랑한다면 한번쯤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아폴로의 대표곡들과 대표곡이 아닌 곡들을 좋아했다. 어느 쪽이냐면 대표곡이 아닌 노래들이 더 좋다고 여기면서.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다. 이쪽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빙글빙글, 그를 가운데 두고 궤도를 돌 수 있다면.

영하 40도의 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112도의 분노로.

나도 그냥 이벤트였으면 좋겠어. 이렇게 모든 중심을 다 내어주지 않아도 되는, 잠깐의 이벤트면 좋을 텐데.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굼을 꿨던 거? 하지만 첫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한아는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얗게 타는 발자국을 남기면서 열심히 달려가란 말이다.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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